'수사통보' 조항에 반발...한국당·검찰 '공수처법 저지' 협공 - 한겨레
‘지소미아 파기 철회, 공수처 설치법 포기, 연동형 비례대표제 선거법 철회’를 요구하며 무기한 단식투쟁에 돌입한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지난달 20일 저녁 국회 본청 앞 계단에 설치된 천막에서 단식투쟁을 시작하고 있다. 연합뉴스
“다른 수사기관이 범죄를 수사하는 과정에서 고위공직자 범죄 등을 인지한 경우 그 사실을 즉시 수사처에 ‘통보’해야 한다.”
‘4+1(더불어민주당·바른미래당·정의당·민주평화당+대안신당) 협의체’에서 합의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법에 이 조항이 막판에 들어가면서, 이를 둘러싼 공방이 거세지고 있다. 검찰과 자유한국당 등에서는 공수처가 다른 수사기관에서 인지한 사건을 통보받는 자체를 문제 삼고 있다. 공수처가 다른 수사기관의 ‘상위기관’이 돼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를 수 있다고 지적한다. 반면 민주당 등에서는 공수처가 대통령, 국회의원, 판검사 등 고위공직자 범죄의 수사를 맡기로 한 만큼 다른 수사기관에서 이를 알려주는 게 당연하다고 반박했다. 두 주장은 결국 공수처 설치에 찬성하느냐, 반대하느냐에 대한 입장차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 ‘통보’ 조항 왜 추가됐나
공수처 설치에 반대하는 이들은 해당 조항을 두고 ‘원안에 없던 독소 조항’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스트트랙에 오른 공수처법 원안에도 ‘공수처장이 수사 진행 정도 등에 비춰 수사처에서 수사하는 게 적절하다고 판단해 이첩을 요구하면 해당 수사기관은 여기에 응하도록’ 하는 조항이 있었다. 당시에도 한국당은 이 조항을 겨냥해 ‘정권에 불리한 수사를 가져다 뭉갤 수 있다’는 이유 등을 대며 비판했다.
민주당 등에서는 논란이 된 조항을 새로 만든 게 아니라 ‘공수처가 요구해 사건을 가져갈 수 있는’ 권한을 줬으니,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조항을 추가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4+1 협의체’에서 검찰개혁 논의에 참석한 한 의원은 “검찰이 지금은 고위공직자 범죄 수사가 자신들의 권한이니 ‘우리가 왜 통보해야 하느냐’고 반발하지만, 공수처법이 통과되면 수사의 우선권을 공수처가 갖게 된다. 우선권을 갖는 공수처에 사건을 통보하는 건 당연히 필요한 조항”이라고 강조했다.
■ ‘독소조항’으로 볼 수 있나
검찰이나 법조계에서는 이 조항으로 인해 공수처의 권한이 더욱 비대해지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한 부장검사 출신 변호사는 “제도라는 게 선의만 갖고 유지될 수 없다. 이른바 ‘카더라’ 정보를 공수처에 통보해야 할지, 내사 단계에서 통보해야 할지 불분명하다”며 “수사는 밀행성과 신속성이 생명인데 외부 기관에 통보를 하게 되면 수사에 상당한 지장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 조항으로 인해 공수처가 다른 수사기관 위에 서게 된다는 분석도 나온다. 김한규 변호사는 “독소조항까지는 모르겠지만 우려 조항 정도는 되는 것 같다”며 “힘센 검찰을 견제하려고 공수처를 만드는데, 그 공수처에 힘을 다 몰아주는 게 범죄 통보 조항”이라고 말했다. 통보 의무가 있는 수사기관이 이를 어길 경우 공수처가 수사기관을 직무유기 등의 혐의로 수사할 수 있는 근거가 될 수도 있다.
공수처의 성격 자체를 달라지게 하는 조항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한 검사 출신 변호사는 “공수처를 처음 설계할 때는 ‘보충적 수사기관’으로 설계됐다. 그런데 지금은 정권의 검찰에 대한 분노가 너무 크다 보니 검찰 통제기구로 공수처 성격을 자꾸 바꾸려는 것 같다”며 “야당으로서는 ‘공수처장만 장악하면 합법적으로 현 정권 관련 수사를 초기부터 다 알게 되는 구조’라는 우려를 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반면 권력 비대화, 사건 취사선택 등의 우려는 검찰에도 똑같이 적용되는 문제라는 반박도 있다. 검찰개혁 논의에 참여한 한 의원은 “한국당 등이 제기하는 우려는 검찰에 대입해도 마찬가지다. 지금 검찰의 반발은 ‘나는 수사를 독립적으로 잘하지만, 공수처는 독립적으로 못할 것’이라는 얘기 아니냐”라며 “검사는 대통령에게 인사권이 있기 때문에 권력으로부터 독립하는 데 한계가 있지만, 공수처는 그렇지 않다”고 강조했다. 공수처장 후보자가 되려면 야당이 추천한 2명을 포함해 총 7명의 추천위원회 위원 중 6명의 찬성이 필요하다.
■ “기소단계 이첩 요구가 더 혼란 초래”
심재철 한국당 원내대표는 26일 공수처법 수정안을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열어 “이첩 요구만 할 수 있어도 충분히 무소불위 권한인데 추가 조항은 (공직자 수사) 최초 단계에서부터 아예 싹을 자르겠다는 것”이라며 “내 마음대로, 선택적으로 수사해 살아 있는 권력 수사는 시작하기도 전에 묻히게 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4+1 협의체’에 참석했던 박주민 민주당 의원은 “통보 조항만 보지 말고, 회신 조항도 봐야 한다. 즉, 공수처가 통보를 받고 며칠 내로 수사할 것인지 아닌지 회신하게 돼 있다. 이게 없으면 검찰도 수사를 제대로 안 할 가능성이 있다. 언제 공수처가 사건을 가져갈지 모르는데 수사를 성실히 하겠나. 미리 교통정리를 하자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하태훈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공수처가 만들어지는 이상 수사기관은 고위공직자 범죄를 공수처에 통보하는 방식으로 가야 한다. 그래야 공수처 기능이 제대로 이뤄질 수 있다”며 “독소조항이라는 지적은 검찰이 현재 고위공직자 수사를 잘하고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서영지 정유경 박준용 기자
y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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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26 10:35:10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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