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선도연구센터 30년, 기초과학의 역사를 만들다 -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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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선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제1차관
대학 기초연구 역량 견인… 영향력 있는 연구자 배출
기초과학 뿌리 다지는 초석

정병선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제1차관

‘전자펜으로 컴퓨터와 직접 대화, 자판 없는 PC 만든다.’ 한국과학기술원의 ‘인공지능 연구소(1990년 ERC, 센터장 조정완)’의 연구를 소개한 1991년 신문기사의 제목이다. 지금은 화면을 터치해서 문자를 입력하고 전자펜으로 화면에 직접 그림을 그리거나 필기하는 것이 너무나 익숙하지만 1991년 한국은 전화선을 이용해 연결하는 하이텔, 천리안 등의 PC통신 서비스가 막 활성화될 때였다. 인터넷 서비스조차 본격화되지 않았던 30년 전 지금의 스마트폰을 연상시키는 연구를 시작했다는 사실은 1990년대 이후 한국이 과학기술 강국으로 발돋움할 수 있었던 밑바탕에 수많은 과학 기술인들의 노력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한국과학기술원의 인공지능연구소는 1990년도부터 시작된 정부의 선도연구센터 사업에 최초로 선정된 우수 연구센터들 중 하나다. 국가 연구비라는 개념조차 생소했던 1990년, 정부는 13개의 우수한 대학 연구 그룹을 선정해 연 10억 원씩 9년간 기초연구 연구비를 지원하는 선도연구센터 사업을 시작했다. 1990년대 이전까지 우리나라의 중장기적 연구개발은 주로 정부 출연 연구기관이 주도했고 대학은 충분한 연구 기반이 갖춰지지 않아 교수들이 원하는 수준의 장기적 연구를 수행하기 어려웠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선도연구센터 사업의 시작은 대학의 기초연구 역량을 견인할 뿐만 아니라 국내외 기초연구를 이끌어가는 영향력 있는 연구자들을 배출하는 등 우리나라 기초과학의 뿌리를 튼튼하게 만드는 초석이었다.

기초연구는 이론과 실험을 바탕으로 새로운 이론과 지식을 창출하는 연구 활동으로 특정한 사용이나 응용을 계획하지 않고 출발하기 때문에 단기간에 눈에 보이는 성과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장기간에 걸쳐 다양한 분야에 응용돼 원천기술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장기적인 지원이 중요하다. 선도연구센터 사업의 시작과 함께 선정된 센터들은 30년 후의 미래를 준비하는 연구들이었고 긴 시간 성숙해갔다. 앞서 소개한 한국과학기술원의 인공지능연구소뿐만 아니라 반도체 특성을 연구하고 현재까지 대학 연구소로 남아 관련 분야 인력을 육성하고 있는 ‘반도체 물성 연구센터(1990년 SRC, 센터장 이형재)’ ‘쎄트렉아이’라는 국내 유일의 위성시스템 수출 기업의 설립부터 2013년 나로호 발사가 성공할 수 있는 원천이 된 ‘인공위성 연구센터(1990년 ERC, 센터장 최순달)’까지 다양한 분야의 센터들이 배출한 우수 인력과 기초연구 성과들은 혁신적 기술을 추진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하는데 중추적 역할을 했다.
30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순수 자연과학 연구를 지원하는 이학선도연구센터(SRC)와 국제수준의 기술 확보를 통해 산업계의 응용을 목표로 하는 공학선도연구센터(ERC)로 시작한 선도연구센터는 건강, 질병과 관련된 연구를 지원하는 기초의과학분야선도연구센터(MRC), 지역의 인재 양성과 지역 연구 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지역혁신선도연구센터(RLRC)로 확대됐고 지금까지 358개의 센터 지원을 통해 다양한 분야에서 각 센터 목적에 맞는 기초연구 역량 향상과 인재 양성에 힘써오고 있다.

주요기사

5월 28일 세계적 학술지 네이처는 ‘네이처 인덱스 2020 한국판 특별호’를 발행하며 기초연구 지원 확대를 통한 ‘선도자(first mover)’가 되려는 한국의 연구 전략을 집중적으로 주목했다. 네이처 인덱스가 1993년 대전엑스포 이후 27년 만에 우리나라의 과학기술을 재조명한 바탕에는 오랜 기간 꾸준히 연구에 매진해온 연구자들이 있다. 30년 전 척박했던 국내 기초연구 토양에 선도연구센터 사업이 단비가 된 것처럼 과기정통부는 앞으로도 우리나라 연구자들이 미래를 열어가는 연구를 개척해 나갈 수 있도록 든든한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다.

정병선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제1차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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