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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과학적 사고, 확증편향…사람들은 아직 2만 년 전 뇌를 쓴다 - 중앙일보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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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만 부 팔린 『과학 콘서트』 저자 KAIST 정재승 교수

‘잘 될 수도 있고 잘못될 수도 있는 일은 반드시 잘못된다.’ 이런 머피의 법칙은 과학적 근거가 없지 않다. 적어도 버터 바른 토스트를 떨어뜨렸을 때 버터 바른 면이 바닥이나 천장 중 어디를 향하느냐는 문제에 있어서는 그렇다. 반면 인류 최고의 천재 아인슈타인조차 평생 자신의 뇌를 15%밖에 못 쓰고 죽었다는 얘기는 과학적 사실이 아니다. 단순한 사고 작용을 수행하는 데도 뇌의 다양한 영역이 활발하게 활동하기 때문이다.
 

‘복잡계 과학’ 소개해 신선한 반향
한 달 강연요청 1200건, 8건 응해

쉽게 믿지 않는 게 과학적 태도
반대 증거 나오면 받아들여야

알쏭달쏭한 과학 이야기에 호기심이 동한 숱한 사람들이 이 책을 사봤다. 2001년 출간 이후 지금까지 KAIST 정재승 교수의 『과학 콘서트』를 선택한 사람들이 무려 80만 명이다. 책은 앞서 소개한 것 같은 깨알 과학지식을 전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자연과 인간 세상이 아무리 무질서해 보이더라도 ‘복잡계 과학’으로 설명 가능하다며 뉴욕의 주식시장, 클래식 음악의 아름다움과 인간 두뇌 창조성의 비밀을 파헤쳤다.
  
술·담배·당구·골프 안 해
 
정재승 교수의 『과학 콘서트』 이전에는 우리나라에 교양과학 독서 시장이 존재하지 않았다. 정 교수 책이 한 획을 그었다. [사진 임안나]

정재승 교수의 『과학 콘서트』 이전에는 우리나라에 교양과학 독서 시장이 존재하지 않았다. 정 교수 책이 한 획을 그었다. [사진 임안나]

『과학 콘서트』 이전까지 국내 교양과학 도서 시장은 제대로 형성조차 돼 있지 않았었다고 한다. 물론 이후 사정이 달라졌다. 지금은 너무나 많은 과학책이 쏟아져 나와 오히려 ‘제2의 과학 콘서트’가 나오기 어려운 상황이다.
 
책은 동아시아 출판사에서 처음 나왔으나 중간에 어크로스로 출판사가 바뀌었다. 출간 20년을 맞아 개정증보 2판이 나왔다. 지난 11일 서울 독서당로에 있는 빅데이터 회사 다음소프트의 사옥에서 정 교수를 만났다.
 
감회가 남다르겠다.
“『과학 콘서트』의 그늘에서 벗어나 새로운 성취로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강했던 시기가 있었다. 네이처 같은 학술지에 논문을 발표해도 알아주지 않고 과학책 저자로만 여기는 것 같아서였다. 돌이켜보면 온전하게 내 모습을 닮은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처음 책을 낼 때는 좋게 봐주셔서 열심히 해보겠다는 패기가 생겼고, 10주년 무렵 개정판에는 더 이상 젊은 과학자가 아니라는 생각에 연구 성과를 집어넣으려 했다. 이번 판에는 좀 더 사려 깊고 성찰적인 내용을 추가하려 했다.”
 
책이 가져다준 가장 큰 건 뭔가.
“책을 썼다고 해서 떠나 보낸 게 아니었다. 『과학 콘서트』 호의 선장으로 학문의 세계를 탐험할 때 굉장히 큰 도움이 됐던 것 같다. 모르는 학자들과 교류할 때 쉽게 마음을 열고 공동 연구를 해준다. 과학을 좋아하거나 과학에 관심 있는 낯선 사람들이 쉽게 말 건네는 사람이 된 점도 반갑다. 책 잘 읽었어요, 선생님 책 읽고 과학자를 꿈꾸게 됐어요, 책에 있는 이 계산은 이런 걸 고려해야 했는데 틀린 것 같아요, 이런 내용의 e메일을 보내거나 말을 건넨다.”
 
책의 성공 비결을 꼽는다면.
“물리학이 우주와 자연만 탐구하는 게 아니라 인간 사회의 현상도 설명할 수 있다는 점을 신선하게 여긴 것 같다.”
 
과학책 저자가 아닌 학자 정재승이 정작 어떤 연구를 하는지는 모르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정 교수는 모교 KAIST의 바이오및뇌과학과 교수 겸 문술미래대학원장이다. 융합기초학부장을 곧 맡게 된다).
“사람들이 의사결정을 할 때 두뇌 안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알기 위해 사진 촬영을 하고 브레인 다이내믹스(두뇌 동역학)를 기술하는 일을 주로 하는데 응용을 많이 할 수 있다. 가령 담배·마약 중독자들이 나쁜 줄 알면서도 계속해서 나쁜 선택을 할 때 두뇌 안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연구한다. 사람처럼 의사결정을 하는 인공지능 개발에 도움을 주는 일도 또 다른 연구 갈래다.”
 
무척 바쁘겠다.
“주 중에는 주로 수업이나 연구 미팅, 논문 지도를 한다. 주말에 책을 쓰거나 강연을 하는데 한 달 평균 1200건 정도 강연 요청이 들어온다. 그중 8건 정도를 골라 배치하고 나머지는 정중히 거절한다. 다행히 술·담배·당구·골프를 안 한다. 술은 분해를 못 하는데 꼭 마셔야 한다면 소주나 맥주 반 잔 정도?”
 
한 달 강연 요청이 1200건이나 오나?
“코로나 때문에 주춤하긴 했지만 여전히 온라인 강연 요청이 많다.”
 
8건은 어떻게 고르나.
“강연료는 기본이다. 김영란법 허용치 이상을 받는 건 아니다. 강연료보다 중요한 건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다. 의미나 보람을 따져 선정한다.”
  
과학 콘서트

과학 콘서트

『과학 콘서트』에 온전한 내 모습 담겨
 
정 교수는 “과학은 하나의 태도”라고 했다. 책을 쓰게 된 동기를 얘기하는 대목에서다. “어떤 대상은 과학적으로 대하고 어떤 대상은 과학적으로 대하지 않고, 이런 게 아니라 기본적으로 세상을 대하는 과학적 자세 같은 게 있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이런 책을 쓰게 된 것 같다”고 했다. 그런데 과학적인 태도야말로 한국사회에 필요한 덕목 아닐까.
 
과학자가 보기에 한국 사람들은 얼마나 과학적인가. 혹은 비과학적인가.
“한국 사람뿐 아니라 세상 사람들이 원래 충분히 과학적이지 않다. 아무런 과학적 근거가 없는데도 혈액형과 성격 사이의 상관관계 같은 것을 믿지 않나. 음모론을 쉽게 믿기도 하고, 중요한 의사결정을 할 때 정책이나 공약을 따지기보다 그 일과 관련된 사람이 무슨 무슨 감이 아니라며 부정적인 판단을 내리기도 한다.”
 
과학적 태도를 가지려면.
“어떤 것도 쉽게 믿지 않는 태도가 필요하다. 반면 증거가 있다면 받아들이는 태도도 있어야 한다. 열려 있으면서도 비판적인, 양립하기 어려운 두 태도가 모두 필요한 것이다. 무엇이든 쉽게 믿지 않지만 직관과 다르더라도 증거를 대하면 받아들이고, 그렇게 받아들였다가도 반증이 될 만한 증거가 나타나면 언제든지 기존 믿음이 폐기될 수 있다는 게 과학의 매력이다. 그런 태도를 받아들일 수 있다면 우리 사회가 좀 더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확증편향도 문제다.
“옛날에는 그런 태도가 높은 지위에 오르거나 자신의 유전자를 다음 세대에 전할 때 유리했겠지만 지금은 훨씬 합리적인 사회가 됐는데도 우리는 아직 2만 년 전의 뇌를 쓴다. 그러다 보니 어리석은 행동들을 많이 한다.”
 
시 쓰는 것처럼 읽고 또 읽어 문장 고친다
정재승 교수는 문장가까지는 아니라고 하더라도 누구보다 잘 읽히는 글을 쓴다. 소설가 김탁환과 함께 쓴 2010년 SF 소설 『눈먼 시계공』의 ‘작가의 말’에 ‘음성굴과성(陰性屈科性)’이라는 낯선 표현이 나온다. 과학이라면 달아나는 인문학적 생명체의 특성이란다. 지어낸 말이다. 『과학 콘서트』에는 이런 문장이 나온다.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리듬, 심장 박동은 생명의 박자다.” 읽다가 무릎을 쳤다. 정 교수는 단순히 조어(造語)에만 능한 게 아니었다. 무척 잘 읽히는 글을 쓰는 비결을 묻자 이렇게 답했다.
 
“에세이건 다른 어떤 산문이건 세상의 모든 글은 시(詩)라서 읽는 맛이 있어야 한다. 앞으로 돌아가지 않고 한 번에 쭉 읽을 수 있어야 한다. 리듬이 중요하다. 그래서 여러 차례 읽으면서 글을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요즘은 그렇게까지는 아니지만 예전에는 스무 번쯤 읽고 퇴고를 했던 것 같다. 내가 어디서도 막히지 않고 계속 리듬을 타며 읽을 수 있으면 사람들이 술술 읽게 되니까.”
 
신준봉 전문기자/중앙컬처&라이프스타일랩 inform@joongang.co.kr



August 14, 2020 at 10:20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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