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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모없는 과학은 없다[이기진 교수의 만만한 과학] -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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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진 교수 그림
이기진 서강대 물리학과 교수
“이론을 어디다 써먹냐.” 이론물리학을 공부하는 학생들이 곧잘 듣는 얘기다. 물리학은 실험과 이론 분야로 나뉘는데, 실험 쪽 학생들은 졸업 후 대기업에 쉽게 취직하지만, 이론 쪽 학생들은 그렇지 못하다. 그런데 얼마 전 내 연구실 옆방 이론물리학자 김 박사 밑에서 블랙홀을 공부하던 학생이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포털 기업에 취직했다.

세상이 바뀌었다. 대기업에서 필요로 하는 자질은 당장에 써먹을 수 있는 기술이 아니라 수학적, 논리적 사고가 아니었을까? 우리가 수수께끼 같은 우주의 법칙을 하나둘 알게 된 것은 모두 물리학적 상상력과 수학적 논리 덕분이다.

세상은 이미 나노 세계의 끝에 와 있다. 반도체 미세공정은 5나노를 넘어 3나노 기술 경쟁을 벌이고 있는 상황이다. 1나노미터(nm)는 10억분의 1m에 해당한다. 이런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를 넘나들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새로운 창의적인 사고뿐이다.


양자역학은 또 어떤가. 지금까지 양자역학의 세계는 파동과 입자라는 두개의 문을 동시에 통과하는 세계였지만, 앞으로는 인공지능 세계와 접합되어 새롭게 발전할 것이다. 아마도 두 개의 문을 하나로 만드는 세계일지도 모른다. 중요한 것은 이런 세계는 어설프게 흉내 내고 모방해서는 절대로 도달할 수 없는 세계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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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일본과의 무역 마찰로 반도체 주요 소재, 부품, 장비(소부장) 산업 등의 국산화가 중점 과제로 떠올랐다. 뒤늦게나마 일본 의존 산업에 대한 경각심을 가진 것은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힘으로 못할 게 무엇인가? 1853년 일본에 도착한 매슈 캘브레이스 페리 제독은 무역을 위하여 개항을 요구했다. 서양의 과학을 목격한 일본은 과학의 중요성을 깨닫고는 부랴부랴 애국심으로 똘똘 뭉친 사무라이들을 유럽으로 보냈다. 그곳에서 그들은 양자역학의 시작을 몸으로 경험한다. 대표적 과학자가 코펜하겐의 닐스 보어 연구소에서 양자역학 이론을 공부한 니시나 요시오다. 그는 일본으로 돌아와 유카와 히데키, 도모나가 신이치로 같은 후학을 기르는 등 일본 양자역학의 토대를 마련했다. 특히 니시나의 제자이자 노벨상 수상자인 유카와는 오로지 일본 교토에서만 교육을 받은 이론물리학자다. 당시 전쟁 중이기도 했지만 유카와의 입자 이론물리학 연구는 서양 문헌이 아닌 곳에 독립적으로 발표되기도 했다. 문화적 배경이 다른 환경에서 탄생한 물리학적 관점이 또 다른 과학의 발전을 이끈 셈이다. 이러한 학문적 전통 아래, 일본의 기초과학은 여전히 세계적인 수준을 자랑한다.

아쉽게도 요즘 소부장 산업의 국산화에 대한 이야기는 나와도 기초과학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없다. 물론 당장 눈앞의 이익은 중요하다. 사느냐 죽느냐의 문제이기 때문. 하지만 기초과학이 앞으로 얼마나 큰 공헌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이는 어쩌면 미래를 내다봐야 하는 지도자의 역사적 역할일지도 모른다. 경쟁이 치열한 사회이지만 꾸준히 연구를 지속할 수 있도록 연구비 마련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기초과학자를 국가가 배려했으면 한다.

이기진 서강대 물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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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ly 17, 2020 at 01:00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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