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가 피해라는 이름을 얻는 데에도 노력이 필요하다. 어떤 노력은 노력이라는 말로 두루뭉술하게 덮어버리기엔 지나치다. 노력은 해야 하는 것, 하면 좋은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어떤 노력은 일상을 다 파괴하고, 피해가 더 끔찍해진 뒤에야 겨우 피해로 인정받는다. 이제는 모두가 사실로 받아들이는 반도체 노동자들의 직업병과 석면·가습기살균제·원전 방사능의 피해도 처음엔 그랬다.
의사이자 과학자, 연구활동가 백도명은 ‘그럴 리 없다’와 싸워왔다. 석면을 쓰면 안 된다고? 그럴 리 없다. 반도체공장에서 일한 것 때문에 백혈병에 걸렸다고? 그럴 리 없다. 폐손상이 가습기살균제 때문이라고? 그럴 리 없다. ‘그럴 리 없다’가 ‘그럴 수 있다’에서 ‘그렇다’로 바뀌기까지 백도명이 한 일은 연구였다. 피해사실을 수집하고 데이터를 분석해 구체적인 입증자료로 만들어냈다. 백도명의 노력과 연구 덕분에 많은 이들이 피해를 호소하거나 주장하는 사람이 아닌 피해자가 될 수 있었다.
서울대 교수(보건대학원장)로서 정년퇴임을 1년 앞둔 그는 여전히 활발한 연구활동을 하고 있다. 지난 7월엔 2013~2017년 암 진단을 받은 라돈침대 사용자 125명의 자료를 분석해 ‘라돈침대 건강영향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3월 대구에서 코로나19가 확산됐을 땐 자원봉사를 다녀왔다. 1월엔 산업재해와 성폭력, 유해화학물질 피해자 등을 연구한 ‘직업·환경병 생존자 문화의 개념과 가능성 모색’이라는 연구보고서도 펴냈다. 그는 연구실 안에만 있지 않는다. 기자회견, 1인 시위 현장에서 그의 모습을 찾는 건 어렵지 않다. 두 차례 열린 라돈침대 피해자 기자회견에 모두 참석해 마이크를 잡았다. 2015년엔 가습기살균제 제조사인 옥시 본사가 있는 영국에 원정시위를 가기도 했다. “피해사실을 입증하고, 알리고 더 나아가 사회를 바꾸는 것이 과학자의 책임”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지난 13일 서울대 연구실에서 백 교수를 만나 그가 생각하는 ‘안전사회’에 대해 들어봤다.
■백도명 교수 “안전 문제를 피해·가해 구도로 접근하면 해답과 점점 멀어져요”
현장에서 피해자 목소리 듣는 ‘연구활동가’ 백도명 교수
90년대 초 직업병·산재 정책 보며
정치적 입김 작용하는 현실 절감
피해자 있는 곳 직접 찾아다니며
데이터 분석하고 자료 만들어
- 의대 졸업 후 영국과 미국에서 산업보건학을 공부(석·박사)했습니다. 한국에선 낯선 분야였는데 어떻게 관심을 갖게 됐나요.
“제가 75학번인데 굉장히 살벌한 때였죠. 어울리던 친구들 그룹에서 졸업을 할 거냐, (노동) 현장에 들어갈 거냐 이런 얘기들을 하곤 했어요. 전 방학 동안 구로공단의 릴낚시 부품공장에 위장취업을 했어요. 그 넓은 공간이 엄청난 소음으로 가득 차 있다가 점심시간이 되면 딱 멈췄던 기억이 나요. 서울의 소위 ‘달동네’라는 곳에서 한 달 살아보기도 했고, 강원도의 한 무의촌에서 한 달 동안 살며 진료활동을 돕기도 했어요. 천주교 원주교구의 간호사 네 분이 들어가 살면서 주민들을 돌보는 곳이었는데, 어떻게 그런 시스템이 가능할까, 내가 그곳에 들어가도 의미가 있을까 그런 생각을 했었죠. (청계피복노조 설문조사 작업에도 참여했었죠.) 그쪽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는 운동가 그룹이 있었거든요. 의대생인 제가 뭘 많이 알았겠어요. 찾아볼 수 있는 자료 중에 ‘코넬메디컬인덱스(CMI Index)’가 있었는데 그걸 적용할 수 있도록 작업을 해서 건네준 정도였습니다.”
- 의대 공부만으로도 시간이 부족했을 것 같은데 그렇게 한 이유가 있었나요.
“음…(세상이) 문제가 있는데 그게 꼭 정치만의 문제라기보단 사회 전체가 다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뭘까 고민되는 시점이었죠. ‘직업병’이라는 말만 해도 불온한 사람, 불순한 사람이라는 말을 들을 때였는데, 좀 뭐랄까요. 직업병을 연구하거나 진단하는 의사가 되는 것도 의미가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그 시대를 살면서 할 수 있었던) 자기만족 내지는 자기위안이었던 것 같아요.”
1992년 시작한 석면 유해성 연구
2009년 석면 사용금지 이끌어
반도체 사업장 벤젠 사용 보고서
삼성의 의뢰로 이뤄진 연구였지만
영업비밀보다 알권리 먼저 생각
백혈병 피해 입증 증거로 작용
- 막상 돌아와서 본 현실은 막막했을 것 같습니다.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것이 1992년이었어요. 87년 6월 항쟁 이후 88년에 ‘민주’자가 들어간 많은 단체가 만들어지고, 91년도에 원진레이온 사건(원진레이온에서 일하던 김봉환씨가 이황화탄소 중독으로 사망하면서 알려진 산업재해사건. 공장은 1993년 폐쇄됐고, 2017년까지 900명이 넘는 노동자들이 이황화탄소 중독 진단을 받았다.)이 알려지면서 그나마 업무상 질병이라는 것이 문제가 되기 시작했죠. 그때 노동부에서 연 회의에 참석을 했는데, 직업병이나 산재와 관련된 제안이 있으면 좀 해보래요. 그래서 사업장의 물질안전에 관한 자료를 만들어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주자고 얘기를 했어요. 그게 채택돼서 94년도부터 시행이 됐거든요. 근데 그게 풀려나가는 과정을 보니까 아 정말 이건 아니다 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제가 제안한 건 ‘알권리’ 차원에서 실제 사업장에서 쓰는 물질을 파악하고 문제를 정리해서 사업주도 알고, 일하는 사람들도 알게 하자는 것이었는데 미국에서 만든 물질안전보건정보를 그냥 한국말로 번역해서 사업장에 비치하는 게 끝이었어요. 정부에서 뭘 바꿨다고 하면서, 그냥 그런 식으로 생색을 내고 포장을 하는 것이지 실제 바뀌는 건 없는 거죠.”
- 어렵게 뭔가를 만들었는데 실망이 컸을 것 같습니다.
“사실 전 노동부가 달라지고 노동정책이 바뀌면 많은 것이 좋아질 수 있을 거라고 기대했는데 아니더라고요. ‘톱다운 방식’이라는 건 문제해결에 별 도움이 안 되는구나 느꼈어요. 노태우 정부에서도 88올림픽을 앞두고 직업병에 대한 신고를 받았어요. 어떤 분이 납사업장에서 일하다 아파서 그만두고 몇 개월 뒤에 신고를 했는데, 혈중 납성분을 측정했더니 59가 나왔다고 (산재신청이) 기각됐어요. 기준인 60에 못 미친다는 거죠. 납성분이 몇 개월 동안 몸에서 빠져나간 건데, 건강상태가 정확히 어떻고 납성분이 얼마만큼 왜 빠져나갔는지를 종합적으로 판단을 해야 하는데 단지 자의적인 기준을 만들고 안 된다…이렇게 하는 건 절대 문제를 해결하는 게 아닌 거죠.”
- 정치적 해결방법에 한계를 느꼈군요.
“안전보건의 문제인데 해결방식은 정치적인 입김에 따라서 처리되는구나 싶었죠. IMF 외환위기가 터지고 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대기업의 큰 노조조직을 중심으로 근골격계 질환 문제가 많이 제기됐어요. 구조조정 때문에 업무강도가 심해지면서, 노동강도를 조사하는 작업을 했었죠. 이걸 어떻게 풀 수 있을까 싶었는데, 인권이나 노동권 문제로 풀리지 않고 노사교섭을 통해 위험수당을 더 주는 방식으로 끝나더라고요. (제 연구가) 노사교섭에 유리한 내용으로 이용된 거죠. 노조 안에서도 노조정치라는 게 있으니까요. 위험을 없애거나 줄여야 하는데…위험수당을 더 주는 것으로 해결한다는 게…그게 참 저로서는 힘들었습니다.”
- 현장을 다니며,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많이 듣는 연구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때의 경험에서 깨달음을 얻은 건가요.
“문제를 갖고 있는 분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면 이 문제가 어디서 막혔고 왜 그렇게 됐는지 어떻게 풀어야 할지가 조금은 더 잘 보이는 것 같아요. 산업안전공단에서 막 연구원을 만들었을 때 제가 파트타임으로 연구실장을 했는데, 그때 했던 사업 중 하나가 발암물질을 쓰는 취약사업장 점검이었어요. 석면이라는 것이 잘 알려져 있는 발암물질이고 유럽에선 일찍부터 금지시켰는데, 석면이 워낙 광범위하게 쓰이다 보니까 한국에선 이 문제를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아이디어가 없었어요. 그때 석면사업장 근처에 있는 피해자들을 찾아다니는 작업을 했어요. 부산의 석면사업장에 다녔던 아픈 분들의 모임이 있어서 만났는데 도움이 많이 됐어요. 충청도 광산에서 일하신 분들도 만날 수 있었고요.”
백 교수의 연구실에는 ‘94석면사업장’이라는 이름의 두꺼운 폴더가 있다. 백 교수는 국내에서 가장 오래, 가장 끈질기게 석면의 유해성을 연구한 학자로 꼽힌다. 한국은 일본보다도 3년이나 늦은 2009년에서야 석면 사용을 전면 금지했고, 2010년 석면피해구제법을 만들었다.
- 2009년 만든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장(기흥공장) 위험성 평가자문보고서’는 반도체 백혈병 노동자들의 산재를 인정하는 중요한 자료가 됐습니다. 그 연구는 어떻게 진행한 건가요.
“연구조사 자체는 사실 크게 어렵지 않았어요. 삼성에서는 발암물질을 쓰지 않았다고 했는데, 유기용제들을 만들 땐 불순물들이 섞여 있거든요. 석유화학물질로부터 나오는 유기용제의 가장 중요한 불순물 중 하나가 벤젠이고 벤젠이 백혈병을 일으키죠. 그런데 삼성이 했다는 조사에선 불순물에 대한 체크가 빠져있었어요. 근무가 3교대로 이뤄지는데 주간만 측정했고, 사실 중간 중간 정비할 때 유해물질들이 많이 나오게 되는데 정비하는 시간에 대한 측정도 안 했죠.”
백 교수 연구팀은 삼성전자 기흥공장에서 벤젠이 쓰였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만들었다. 근로복지공단에서 실시한 역학조사와는 전혀 다른 결과였다. 이 보고서는 기흥공장에서 일하다 백혈병에 걸려 숨진 고 황유미씨 유족 등이 근로복지공단(피고 보조참가인 삼성전자)을 상대로 제기한 산재 소송에서 피해자들에게 유리한 증거로 작용했다. 재판은 1·2심 모두 피해자 승소였다. 당시 연구와 재판을 토대로 삼성은 2014년 조정위원회를 만들었고 2018년 피해자들에 대한 보상안과 재발방지를 위한 대책을 발표했다.
- 그 연구는 원래 삼성이 의뢰한 거였죠. 삼성에 유리한 결과를 얻으려고 맡긴 연구였을 텐데요.
“(연구결과를 안 뒤에) 삼성에서 어떤 사람이 찾아왔었어요. 자기들이 다른 곳에 맡겨서 재분석을 했는데 그걸로 발표하라고요. (어떤 곳에 맡겼다는 건가요.) 모르겠어요. 어딘지 모르겠지만 그건 안 된다고 했죠. 그분이 그때 그런 얘길 했어요. 백도명이라는 사람이 굉장히 키도 크고 목소리도 크고 우락부락한 사람일 거라고 생각을 했는데 실제 만나보고 달라서 굉장히 좀 그랬대요. (뭐라고 답하셨나요.) 뭐…전 그렇게 목소리 높은 사람은 아니라고 그랬죠.(웃음)”
- 그래도 막상 연구결과를 공개하기까지 좀 고민하진 않았나요.
“사실 제가 한 건 아니에요. 저는 연구팀을 짰고 이런 방식으로 하면 좋겠다고 진행을 했죠. 그걸 알게 된 어떤 분들이 찾아와서 보고서를 좀 가져가도 되겠냐고 물어봤고…가져가시는 걸 저는 그냥 모른 척했을 뿐이에요. 저흰 삼성과 계약이라는 것을 했고, 거기에 보면 비밀유지 조항이 있어요. 삼성에선 영업비밀이라고 주장을 했는데요. 안전보건에 대한 자료는 영업비밀이 될 수 없다는 것이 저의 생각이었어요. 만일 이게 공개돼서 삼성이 고발한다면 영업비밀과 안전보건에 대한 알권리에 대해 한번 정식으로 다퉈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죠. 근데 그런 일은 안 벌어졌네요. 대신 법원에서 전문가 의견을 증거로 채택한다고 해서 그건 냈습니다. (백 교수는 법정 증언도 하겠다고 밝혔으나, 재판부에선 보고서만 증거로 채택했다.)”
피해자들 대부분 약자 그룹 속해
소수자 존중받을수록 사회는 안전
재판이라는 기나긴 싸움 피하고
전문가 영역에서 빠른 해법 찾아야
- 다들 불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재판이 피해자의 승소로 끝났습니다. 결과를 보고 어땠나요.
“글쎄요. 재판이라는 게 꼭 거쳐야 하는 단계였을까 잘 모르겠어요. (피해가 인정되기까지) 시간이 참 오래 걸렸죠. 전문적인 영역에서 전문가답게 논의가 됐더라면 훨씬 더 빨리 쉽게 해결되지 않았을까 싶어요. 피해자들은 사회적 약자그룹에 속할 때가 많아서인지, 논의 자체가 피해자들의 의견을 받아서 진행되지 않는 것 같아요. 나중에 삼성에서 조정위원회를 열고 제가 중재위원이 돼 나갔는데 삼성 측을 대표해서 나온 사람들이 방송사 출신들이었어요. 안전보건 전문가들은 뒤에 있고요. 삼성은 백혈병 문제를 홍보의 문제로 생각했던 것 같아요. 잘 얘기가 안 됐죠.”
백 교수는 환경보건학회장이던 2012년 학회 소속 연구자들과 함께 6개월 동안 가습기살균제 피해 95건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 보고서를 발표했다. 연구자 9명이 비용을 각출해 부담했다. 이 연구를 토대로 정부는 뒤늦게 가습기살균제 피해실태 조사에 나섰다.
- 가습기살균제 피해 조사는 어떻게 하게 됐나요.
“환경보건시민센터 일을 함께하고 있었기 때문에 센터에 신고한 분들의 케이스를 잘 들여다볼 수가 있었죠. 처음엔 산모들 위주로 조사했는데 산모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가족의 문제였어요. 전체를 들여다봐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2011년 말과 2012년 초에 질병관리본부에서 동물실험 결과를 발표했어요. 가습기살균제에 문제가 있고 원인미상의 폐손상과 인과관계가 추정되면서 사용중단을 권고했어요. 그 직후에 보건복지부의 담당 국장을 만났는데, 손을 떼겠다고 하더라고요. 복지부 업무분장이 아니래요. (소비자 피해니까) 산업자원부 문제고, 여기(동물실험)까지는 우리가 했으니까 나머지는 피해자들이 소송을 통해서 해결해야 한다는 거예요. 법정에 가서 해결하라는 거죠. 답답했어요. 이 문제의 성격상 전에 못 본 질환이기 때문에 병원에 가서 진단서를 끊어달라고 하기도 어려워 보였어요. 그렇게 각자 개인이 알아서 문제를 해결하라고 하면…좀 여유가 있고 정보도 있고 소송을 할 수 있는 사람들만 할 수 있잖아요.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어떻게 하나…이건 정말 아니다 싶었죠.”
- 그래서 자비로라도 연구를 진행하게 된 건가요.
“해당 물질이 사람에게 병을 일으켰다면 동물실험 외에 ‘용량반응관계’를 분석해야 했어요. 노출된 사람과 노출되지 않은 사람, 노출된 사람 중에도 질병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들, 접촉한 가족들. 그걸 조사했죠. 환경보건학회에서 집을 방문하는 조사와 작성된 진단서를 분석하는 조사를 수행하면서, 인건비를 0으로 하고 추가적인 의료검사를 최소화해 최소의 비용으로 조사를 했습니다. 1000만~2000만원 정도 들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왜 세상이 안 바뀌는지 궁금하니까 ‘질문 던지는 작업’ 계속해야죠”
가습기살균제 피해 실태 조사를
각자 개인이 해야 하는 상황 답답
자비 들여 연구한 뒤 보고서 발표
폐손상진상위원회 위원장 맡기도
- 연구보고서 발표 후 폐손상진상조사위원장을 맡으셨죠.
“제대로 된 조사를 해야 한다고 꽤 오래 요구를 해서 2013년에 민관합동으로 폐손상진상조사위원회가 만들어졌고, 제가 민간위원장을 맡았어요. 그런데 처음엔 (정부에서) 간단히 차트리뷰 정도로만 생각했던 것 같아요. 저희는 노출을 확인하고 제대로 검사를 하고 케이스로 잘 정리해야 한다고 했어요. 그때 피해 접수된 사람들에 대해 한 사람당 검사비용을 10만원씩 잡으면 몇천만원 정도의 예산이 필요했는데, 그걸 안 주더라고요. 그걸 안 하겠다, 못하겠다고 해서 제가 위원장을 사퇴했어요. 진영 의원이 복지부 장관에 지명됐을 때 국회의원실을 찾아가서 처음부터 설명을 하고, 다시 조사를 시작했어요.”
가습기살균제가 국내에서 처음 출시된 것은 1994년, 가습기살균제를 사용한 원인미상의 폐손상 환자들이 다수 발생했다는 사실이 알려진 것은 2011년이었다. 2013년 정부 차원의 피해접수창구가 만들어진 뒤 2017년 가습기살균제피해자구제법이 시행되기까지 정부가 예산과 부처 간 책임소재를 두고 우왕좌왕하면서 진상조사도 피해회복 구제절차도 지연됐다. 2018년 출범한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는 지난 7월 “정밀조사결과 가습기살균제 사용자는 약 627만명, 사망자는 1만4000명으로 추산된다”며 “현재 신고자는 6817명에 불과하다”고 발표했다.
화학물질 피해를 부인하는 쪽이
유리한 데이터만 가져오는 등
불확실·편향된 정보 탓에 힘들지만
왜 피해가 발생했는지에 집중하면
가치에 대한 선택이 어렵지 않아
화학물질의 피해를 부인하는 쪽도 ‘과학’을 무기로 쓴다. 지금은 ‘사실’이 된 삼성 백혈병과 가습기살균제 피해도 ‘유해하지 않다’ ‘피해사실과의 인과관계를 입증할 수 없다’는 연구조사 결과가 있었다. 옥시로부터 가습기살균제흡입 독성 실험을 의뢰받아 수행한 서울대 조모 교수는 돈을 받고 옥시에 유리한 연구보고서를 써준 혐의(수뢰 후 부정처사 및 증거위조·사기)로 기소됐다. 조 교수는 1심에선 유죄, 2심에선 무죄를 선고받았는데 서울대 연구진실성위원회는 재판과 상관없이 조 교수가 자료를 조작하고, 연구데이터를 축소·왜곡 해석했다고 결론지었다.
- 피해자들이 가장 많이 듣는 말은 ‘그럴 리 없다’입니다. 피해자 스스로도 끊임없이 의심하게 되죠. 피해사실을 입증하는 연구결과에 대해 ‘과잉진단’이라는 공격도 많죠.
“원전 주변 주민들의 갑상선암을 연구했는데, ‘그만큼 건강검진을 많이 했기 때문에 발병률이 높아 보인다’는 주장이 있었어요. 갑상선암은 검진이 시작된 지 오래되지 않았으니까, 그 주장이 맞으려면 갑상선암의 확인율만 높아야 해요. 그런데 조사해 보면 (원전 주변 주민들은) 다른 암들도 90년대부터 발병률이 높아요. 이런 사실들을 종합적으로 판단하면 되는 것인데, 서로 자기 데이터만 가지고 주장하는 식으로 논쟁이 흘러가면 그건 굉장히 어려워지죠. 그럴 때가 제일 힘들었다는 생각이 드네요.”
-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듣다 보면 다소 편향적인 정보에 치우치지 않나 과학자로서 경계하는 마음도 들 것 같습니다.
“자료가 없거나 불확실한 경우들이 있죠. 그럴 땐 선택을 해야 되는 상황이 오기도 해요. 사실 제가 틀렸다고 지적을 받는 게 부끄러운 것은 아니에요. 뭔가 확실한 다른 것이 있는데 놓치거나 못 봤다면 그게 부끄러운 것 같아요. 그래도 불확실한 경우엔 저의 가치판단이 들어가게 되는데, 제가 선택할 수 있는 가치에 대한 선택이 그렇게까지 어렵진 않았던 것 같아요.”
- 어떤 것을 기준으로 삼게 되나요.
“음…분명히 어떤 피해가 있다고 하면 그 피해가 어떻게 발생한 것일까를 생각하는 거죠. 경남 창원의 수정마을에서 STX라는 회사가 매립지에 공장 설립 공사를 추진했어요. 한 수녀님이 저에게 환경영향평가 자료를 들고 와서 검토해달라고 하셨어요. 환경영향평가는 통과했다는데, 그쪽에 사는 주민들이 느끼기에는 일상생활을 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깜짝 놀랄 소음이 있었거든요. 그런 경우에 이 두 가지(적절했다는 평가와 피해자들의 존재) 사이에 어떤 문제가 있을까, 대체 어떤 근거로 평가가 된 것일까, 왜 이렇게 됐을까를 하나씩 추적해 나가는 거죠. (결국 그 공사계획은 백지화됐죠. 2011년 6월25일에 수정마을에서 열린 마을잔치에 앉아 계시던데요.) 아, 예. 초대를 받아서….(웃음) 아무튼 피해자들의 얘기를 들으면 어떤 것부터 점검해야겠다는 것이 훨씬 더 분명해집니다.”
- 지난 1월에 ‘직업·환경병 생존자 문화의 개념과 가능성 모색’이라는 연구보고서를 발표했습니다. 피해자를 수동적 위치에 묶지 않고 세상을 바꾸는 행동의 주체로 보는 내용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왜 피해자에 대한 연구를 하게 된 건가요.
“지난해 한국에서 ‘아시아지역의 산재와 환경병 피해자들의 증언대회’가 있었어요. 피해자들의 문제를 제대로 해결해주면서 체계화하고 이론화하는 일을 하는 분들이 있죠. 그분들의 경험을 좀 더 잘 공유하고, 다듬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증언대회가 끝나고 저희 (연구자들)끼리 모여서 회의를 많이 했는데 피해자가 생존자가 될 수 있느냐, 피해자가 생존자가 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질문을 던졌어요. 그건 상대방의 변화까지 일어나게 하는 것이 아닐까 싶어요. 그게 아직 우리 사회에선 막혀있는 부분이죠. 피해자가 할 수 있는 일이면서도 피해자를 넘어서는 일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석면이 금지된 이후에 학교에서 석면을 철거하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는데, 학부모님들이 제기하는 문제는 지금 당장의 문제라기보다는 다음 세대를 생각하는 거예요. 인권의 문제죠. 다른 사람들도 인권의식을 갖고 동의해줘야 풀리는 문제들이 있어요. 최근 문제가 된 위안부 할머님들과 정의연 사태, 세월호 사건, 박원순 전 시장 사건 등을 보면서도 피해자분들이 제대로 나서고 역할을 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가해자들이 갖고 있는 힘과 지위가 있는데 사실 그 밑에 감춰져 있는 모순과 취약점들이 있거든요. 그런 점을 드러낼 수 있어야 된다고 생각해요. 피해자들을 통해서 변화의 단초를 만들어 가는 게 중요하지만, 권력이나 어떤 힘 뒤에 숨은 가해자들의 모습을 드러나게 하고 결국은 가해자가 변해야 하는 문제죠.”
- 안전은 기본권인데, 어떤 계층에겐 굉장히 노력하고 싸워서 얻어내야만 하는 권리가 된 것도 같습니다. 단순히 빈부격차라고만 표현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선생님이 생각하는 안전사회는 어떤 사회인가요.
“흑백차별정책이 폐지되고 얼마 안 돼서 남아프리카공화국에 갔는데 백인들 집마다 고압전류가 흐르는 펜스가 둘러쳐져 있더라고요. 철조망을 두른다고 흑백갈등의 문제가 풀릴까요? 안전의 문제가 많은 경우 기술적이고 공학적인 문제로 간주되는 것 같은데, 어떤 철조망을 두를까보다 사람들이 왜 담벼락을 넘어가려고 하는지 그걸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가장 중요한 건 위험을 초래하는 행동이 나오게 되는 원인, 특성을 들여다보는 거라고 생각해요. 위험한 조건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일해야 되는 사람들, 살아가야 되는 사람들의 사회적 조건을 어떻게 풀어줄 것인가, 어떻게 사회적으로 우리가 함께할 수 있는가 그 시스템을 만들어야죠. 시스템이라는 건 ‘연결’이거든요. 소수자들이 존중받는 사회에서 범죄나 사건·사고가 훨씬 적은 게 사실이에요. 피해와 가해의 구도를 안전과 위험의 문제로 바꿔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이걸 가진 자와 안 가진 자의 구도로 연결하면, 그건 안전한 사회와는 거리가 멀어지는 거죠. 그런데 그렇게 하려면 피해자 혼자서는 할 수 없어요. 동료들이 있어야 하고, 목소리를 모아야 하죠.”
코로나19 방역을 제대로 하려면
아파도 쉴 수 없는 비정규직 등
우리 사회 밑바닥부터 무너져가는
사람 사이 관계의 문제점 풀어야
백 교수는 지난 3월 대구에 자원봉사를 다녀온 뒤, 7월 국회 생명안전포럼 창립식에서 ‘코로나19와 생명안전’을 주제로 기조강연을 했다. 백 교수는 “‘K방역’이라는 단어로 포장된 내용 안에는 많은 문제들이 함께 들어있다”며 “아파도 쉬거나 치료받을 수 없는 우리 사회의 근본적인 문제들이 코로나라는 형태로 들춰졌다”고 말했다.
- 그날 강연에서 “코로나로 인한 방역과 보건의 문제는 우리 사회 맨 밑바닥부터 무너지며 올라오는 문제들”이고, “방역개념의 재편이 필요하다”고 한 말씀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한자로 ‘인간’이라는 단어는 사람 인(人), 사이 간(間) 자로 이루어져 사람과 사람 사이를 뜻합니다. 사람이 사람일 수 있는 것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즉 연결에 있다는 뜻이겠죠. 그런데 전염병이 사람들 사이의 접촉을 통해 전파되면서…사람 간의 연결을 확인하면서도 한편으로 차단해야 하는 ‘방역’이 평소 사람들 사이에 내재하고 있던 문제들을 밖으로 드러나게 하고 있습니다. 비정규직이 처한 경제적 불평등, 성소수자가 받는 사회적 낙인, 가족 간의 단절까지 부르는 세대 간의 불통 등이 모두 사람과 사람들 간의 ‘관계’를 만들지 못했던 우리 사회의 모습들이었다고 생각해요. 방역이 제대로 역할을 하려면, 이러한 관계상의 문제점들을 함께 풀어주어야 합니다. 실제 저소득 내지 저개발 국가들에서 방역상의 근본적 문제는 자원이나 기술의 부족이 아니라, 사회적 관계의 문제들입니다. 인간이란 그 관계를 끊으면 인간이 될 수 없기에… 전염(접촉)의 위험성을 무시하거나 왜곡하지 않으면서, 서로의 연결을 유지할 수 있는 인간적인 관계의 회복이나 설정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것 같아요. 특히 정부의 역할이 중요해지는 시기인 것 같습니다. 또 방역을 방역으로서 받아들이지 못하는 모습이 있다면 왜 그런지…이를 어떻게 바꾸어야 할지 진지하게 돌아보는 기회를 가져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 정년퇴임을 1년 앞두고 있습니다. 요즘 마음속에 가장 많이 떠오르는 고민이나 질문이 있나요.
“글쎄요. 사실 제가 한 건 별로 대단한 일은 아니었어요. 제가 해야 하는 일을 한 거죠. 저는 늘 경계선에 있는 사람이었던 것 같아요. 피해자들이 있고, 전문가와 학자로서 의견을 가지려면 문제를 들여다봐야 했죠. 제가 했던 건 늘 질문을 던져보는 작업이었던 것 같아요. 왜 안 바뀔까. 모르겠어요. 저는 그 질문을 참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생각하고 생각해서 정리한 것 중의 하나는 ‘데이터-인포메이션-널리지-위즈덤(data-information-knowledge-wisdom)’ 시스템이에요. 자료를 모아서 그걸 어떻게 정보로 만들까. 그것을 어떻게 지식화하고 결국 지혜와 혜안이 되게 할 것인가. 제가 지금까지 했던 건 데이터를 인포메이션으로 만드는 작업이었던 것 같아요. 문제를 해결하고 사회가 변화하려면 어떤 것에 대한 책임을 묻고, 그 책임에 따른 대안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과학자의 사회적 책임이 대안을 고민하는 단계까지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하세요.) 음…왜 세상이 바뀌지 않는 건지 궁금하거든요. 당분간은 이런 작업을 계속하게 될 것 같아요.”
August 22, 2020 at 04:00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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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연구활동가’ 백도명, ‘과학의 이름’으로 약자의 곁에 서다 -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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